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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부처님의 제자들:최초의 비구니 마하빠자빠띠 고따미

페이지85 2025. 4. 3. 08:03

마하빠자빠띠 고따미: 여성 수행 공동체의 문을 연 선구자

불교 역사 속에서 여성의 역할은 때로는 가려져 왔지만, 그 헌신과 수행의 깊이는 결코 간과할 수 없습니다. 그중에서도 초기 불교 교단에 여성 수행자, 즉 비구니의 시대를 열었던 위대한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이모이자 양어머니였던 **마하빠자빠띠 고따미(Mahāpajāpatī Gotamī)**입니다. 그녀의 끈질긴 노력과 간절한 염원은 남성 중심이었던 당시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며, 여성도 깨달음을 향한 수행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왕비에서 수행자로: 세속의 영화를 넘어선 숭고한 열망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석가족의 공주로 태어나 숫도다나 왕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친아들인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한 후, 그녀는 동생인 마야 부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홀로 남겨진 싯다르타를 친어머니처럼 따뜻하게 보살폈습니다. 왕비로서 풍요로운 삶을 누렸지만,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세상의 덧없음과 영원한 진리에 대한 갈망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고 카필라바스투로 돌아와 설법을 펼치셨을 때, 마하빠자빠띠는 그분의 가르침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세속의 모든 영화를 뒤로하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수행자의 길을 걷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을 품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 불교 교단은 남성 수행자 중심이었고, 여성의 출가는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끈질긴 청원, 냉정한 거절: 여성 출가를 향한 험난한 여정

마하빠자빠띠는 부처님께 여러 차례 간청하며 여성의 출가를 허락해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녀는 단순히 감정적인 호소가 아닌,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수행을 통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간절하게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초기에는 그녀의 요청을 단호하게 거절하셨습니다. 이는 당시 사회적 통념과 교단의 안정 등을 고려한 신중한 결정이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부처님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마하빠자빠띠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수많은 여성들과 함께 머리를 깎고 누더기 옷을 입은 채 맨발로 멀리 떨어진 바이샬리까지 부처님을 찾아 나섰습니다. 붓다의 발치에 이르러 눈물로 간청하는 그녀의 간절한 모습은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결국 아난다 존자가 나서서 부처님께 다시 한번 여성 출가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아난다의 간청, 부처님의 숙고: 여성 출가의 조건부 허락

아난다 존자는 부처님께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수행하여 아라한의 경지에 이를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했고, 부처님께서는 그렇다고 답하셨습니다. 아난다 존자는 이 답변을 근거로 여성도 출가하여 수행할 자격이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아난다 존자의 간청과 마하빠자빠띠를 비롯한 여성들의 간절한 염원을 깊이 숙고하신 끝에, 몇 가지 엄격한 조건을 제시하며 여성의 출가를 허락하셨습니다. 이 여덟 가지 조건(팔경계, 八敬法)은 비구니가 비구에게 지켜야 할 존경의 규범을 담고 있으며, 당시 사회적 상황과 교단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을 것으로 해석됩니다.

비구니 교단의 탄생, 새로운 역사의 시작: 여성 수행의 가능성을 열다

마하빠자빠띠는 부처님께서 제시하신 팔경계를 흔쾌히 받아들이고 최초의 비구니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출가를 시작으로 수많은 여성들이 뒤따라 출가하여 비구니 교단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오랫동안 남성 중심이었던 종교계에 큰 변화를 가져온 역사적인 사건이었으며, 여성도 차별 없이 수행하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렸음을 의미했습니다.

마하빠자빠띠는 뛰어난 수행력과 지도력을 바탕으로 초기 비구니 교단을 이끌었습니다. 그녀는 여성 수행자들을 격려하고 지도하며, 그들이 수행에 정진할 수 있도록 돕는 데 헌신했습니다. 그녀의 노력 덕분에 많은 여성들이 불법 안에서 자신의 potential을 발휘하고 깨달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뛰어난 제자들의 탄생: 여성 수행의 빛을 밝히다

마하빠자빠띠의 지도 아래 초기 비구니 교단에서는 뛰어난 수행자들이 배출되었습니다. 지혜 제일로 칭송받는 케마 비구니, 신통 제일의 웃빨라반나 비구니 등은 뛰어난 수행력과 지혜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으며, 여성도 남성과 다르지 않게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이들의 활약은 여성 수행의 가능성을 더욱 확고히 하고, 후대 여성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마지막 여정, 완전한 열반: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

마하빠자빠띠는 오랜 수행 끝에 마침내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고 열반에 들었습니다. 그녀의 마지막 모습은 평화롭고 장엄했으며, 그녀의 삶 자체가 수많은 여성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등불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열반은 단순히 한 수행자의 죽음을 넘어, 여성 수행 공동체의 굳건한 토대를 마련하고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간 위대한 선구자의 아름다운 마무리였습니다.

후대에 끼친 영원한 영향: 여성 불교의 어머니로 기억되다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불교 역사상 최초의 비구니이자, 여성 수행 공동체의 문을 연 어머니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녀의 끈질긴 노력과 용기는 당시 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과 편견을 극복하고 여성도 동등하게 수행할 권리를 쟁취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녀의 삶은 여성에게도 깨달음의 길이 열려 있다는 희망을 제시했으며,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여성 불교 수행자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마하빠자빠띠의 이야기는 불교 역사뿐만 아니라, 여성 인권 신장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녀의 용기 있는 행동은 억압받던 여성들에게 스스로의 권리를 찾고 자신의 potential을 발휘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녀는 단순한 종교적 지도자를 넘어, 사회 변혁을 이끈 선구자적인 인물로 평가받아야 할 것입니다.

맺으며: 마하빠자빠띠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며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끈질긴 노력과 용기로 여성 수행 공동체의 문을 열고, 수많은 여성들에게 깨달음의 길을 제시한 위대한 스승입니다. 그녀의 삶은 우리에게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면 결국 이루어낼 수 있다는 용기를 줍니다. 또한 차별과 편견에 맞서 싸우고, 모든 존재의 평등한 권리를 위해 헌신하는 그녀의 숭고한 정신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마하빠자빠띠 고따미, 그녀는 영원히 여성 불교의 어머니로서 존경받고 기억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