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한국불교의 빛, 만암(萬庵) 스님을 기억하며
- 만암 종헌(曼庵宗憲, 1876~1957) 스님은 격변의 시기였던 대한제국 말기부터 일제강점기, 그리고 해방 이후 한국 불교계에 큰 영향을 미친 선각자이자 교육자입니다.
- 출가 및 수행: 1876년 전라북도 고창에서 태어난 만암 스님은 1886년 백양사에서 취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습니다. 그는 삼선 수행을 중요하게 여기며 수행자 본연의 자세를 강조했습니다.
- 교육 사업: 만암 스님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인재 양성에 힘썼습니다.
- 광성의숙 설립 (1910): 백양사 청류암에 세워진 광성의숙은 불교 경전뿐만 아니라 역사, 국어, 산술 등 신학문을 가르쳐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교육기관 역할을 했습니다. 이는 일제 강점기 민족 교육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습니다.
- 심상학교 설립: 일반인을 위한 교육기관인 심상학교(약수초등학교 전신)를 설립하여 한글, 국사, 수리, 농학 등을 가르쳤습니다.
- 불교전수학교 교장 (1928): 불교 전문 교육기관인 불교전수학교의 초대 교장을 맡았습니다. 이 학교는 이후 중앙불교전문학교를 거쳐 현재의 동국대학교로 발전했습니다.
- 중앙불교전문학교 교장 (1929-1932): 동국대학교 전신인 중앙불교전문학교 교장을 역임하며 불교 교육의 근대화와 체계 확립에 기여했습니다.
- 정광학원 설립 (1947-1955): 해방 이후에는 광주에 정광중학교와 정광고등학교를 설립하여 교육 사업에 헌신했습니다.
- 백양사 중창: 만암 스님은 퇴락했던 백양사를 중창하여 오늘날의 규모로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는 24년간 백양사 주지를 맡아 중창 불사를 이끌었습니다.
- 불교계 활동:
- 임제종 창립: 일제강점기 일본 불교에 한국 불교를 예속하려는 시도에 맞서 한용운, 박한영 등과 함께 임제종을 창립하여 한국 불교의 자주성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 조선불교중앙교무원 활동: 교학부장 등을 역임하며 중앙 불교 교단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 조계종 초대 종정: 해방 이후 혼란스러운 불교계에서 종명을 조계종으로 환원하고 종헌을 개정하는 등 한국 불교 정화 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954년에는 조계종 초대 종정으로 추대되었습니다.
- 만암 종헌 스님의 조계종 초대 종정 추대는 한국 불교 정화 운동의 중요한 결실이자, 격동기 한국 불교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 일제강점기 불교 왜색화: 일제는 한국 불교를 통제하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변질시키려 했습니다. 승려의 결혼 허용, 일본식 사찰 운영 등이 강요되었고, 이는 한국 불교의 전통과 정체성을 훼손하는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 해방 이후 불교계의 혼란: 해방 이후 한국 불교계는 일제 잔재 청산과 전통 회복이라는 과제에 직면했습니다. 하지만 종단 내부의 의견 충돌과 갈등으로 인해 혼란이 지속되었습니다.
- 비구-대처 갈등: 특히 승려의 결혼 허용 문제(대처승)를 둘러싸고 전통적인 비구승과 결혼한 대처승 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했습니다. 이는 종단 분열의 위기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 만암 스님의 역할: 만암 스님은 일제강점기부터 한국 불교의 자주성을 지키고 전통을 수호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해방 이후에는 이러한 혼란을 수습하고 한국 불교를 바로 세우기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덕망과 지도력을 바탕으로 종단 내부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 조계종 종단 출범: 만암 스님을 비롯한 뜻있는 스님들은 한국 불교의 정통성을 회복하고 종단을 재건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1954년 대한불교조계종이 공식적으로 출범하게 됩니다. 이는 왜색화된 불교를 청산하고 전통적인 비구 중심의 종단을 확립하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 초대 종정 추대: 새롭게 출범한 조계종은 혼란을 수습하고 종단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갈 지도자가 필요했습니다. 만암 스님은 그의 덕망과 연륜, 그리고 한국 불교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초대 종정으로 만장일치 추대되었습니다.
- 추대 시점: 만암 스님은 1954년 대한불교조계종이 정식으로 출범하면서 초대 종정으로 추대되었습니다.
- 한국 불교 정통성 확립: 만암 스님의 종정 추대는 왜색 불교의 잔재를 청산하고 한국 불교의 전통적인 가풍과 수행 정신을 되살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 종단 안정과 통합: 그의 지도력은 비구-대처 갈등으로 혼란스러웠던 종단을 안정시키고 통합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 조계종의 위상 확립: 만암 스님은 초대 종정으로서 조계종의 위상을 높이고,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종단으로서의 면모를 갖추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 향후 한국 불교의 방향 제시: 그의 가르침과 종정으로서의 활동은 이후 한국 불교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지침이 되었습니다.
- 배경:
- 선농일치 사상: 수행과 농사를 함께하며 자립적인 삶을 강조하는 '반선반농(半禪半農)' 사상을 실천하고 제창했습니다.
“진리를 향한 끊임없는 실천, 만암스님처럼...”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 우리 삶에도 작은 자각과 정진이 함께하길 바랍니다.
책의 목차
목차발간사 | 한줄기 빛과도 같은 불교의 희망등 _ 진우
추천의 글 | 가장 가난했지만 가장 자비로웠던 보살 _ 무공
제1장 | 북한산 봉우리가 울었다
조상을 바꿀 수 있는가
법맥이 곧 혈맥
포연 속의 최고 지도자 ‘만암 교정’
진정한 정화의 길
폭력이 폭력을 부르다
탄허의 탄식
만암이 옳았다, 만암을 중흥조로!
마지막 죽비
제2장 | 인연은 박하고 인간사 참혹했노라
어머니 손을 잡고 산문을 넘다
넓고 평탄했던 스승 취운
백양사의 큰 스승 환응
작지만 큰 절 구암사
추사가 지은 호를 받다
연담의 영정을 가져오다
으뜸 도량 운문암 강석에 앉아
나라는 기울고 만암은 일어서다
제3장 | 맑은 거울은 앞뒤가 없다
이것이 무엇인가
물외암에서 깨닫다
학명이 깨달음을 만져주다
해동율맥을 잇다
백양사에 세운 금강계단
중도를 설파하다
제4장 | 임제종통을 지킨 남녘의 선승
백양사 스님들 “부처를 팔지 말라”
백용성과 박한영의 죽비
만암 ‘선우공제회’ 깃발을 들다 직사각형 입니다.
제5장 | 아름다운 절에 천년의 하늘을 담다
백양사를 다시 거룩한 백양사로
도의 스님 영각을 짓다
다시 솟아오른 운문암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다
남도 제일의 풍광 쌍계루
제6장 | 가장 가난했던 자비 보살
동물들도 만암 곁을 맴돌아
중이 되기 전에는 부처를 말하지 말라
노동은 또 다른 선이다
반선반농 운동을 최초로 펼치다
제7장 | 인재 불사가 곧 항일
광성의숙에 중도 하차는 없다
최초의 근대불교학교 명진
흔들렸던 불교학교
3.1만세혁명과 저항운동의 기수들
인재 불사의 꽃, 만암을 교장으로
정신문화의 요람, 중앙불전을 세우다
최후를 책임지는 인문학의 왕국
정광학원을 세우다
제8장 | 오래된 새 길, 고불총림
고불의 길을 따라 부처님처럼
고불총림은 또 다른 영산회
제9장 | 대웅전을 태우려면 나도 태우시오
구름도 숲도 울었다
제자 서옹
손상좌 수산
제10장 | 당우들이 소복을 입다
열반 직사각형 입니다.
글을 마치며 | 부처의 길에서 멀어진 이들은 만암 스님이 무서웠을 것이다
부록
만암종헌 대종사 연보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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