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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서적소개

만암평전

by 페이지85 2025. 4. 17.

근현대 한국불교의 빛, 만암(萬庵) 스님을 기억하며

  • 만암 종헌(曼庵宗憲, 1876~1957) 스님은 격변의 시기였던 대한제국 말기부터 일제강점기, 그리고 해방 이후 한국 불교계에 큰 영향을 미친 선각자이자 교육자입니다.
    • 출가 및 수행: 1876년 전라북도 고창에서 태어난 만암 스님은 1886년 백양사에서 취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습니다. 그는 삼선 수행을 중요하게 여기며 수행자 본연의 자세를 강조했습니다.
    • 교육 사업: 만암 스님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인재 양성에 힘썼습니다.
      • 광성의숙 설립 (1910): 백양사 청류암에 세워진 광성의숙은 불교 경전뿐만 아니라 역사, 국어, 산술 등 신학문을 가르쳐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교육기관 역할을 했습니다. 이는 일제 강점기 민족 교육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습니다.
      • 심상학교 설립: 일반인을 위한 교육기관인 심상학교(약수초등학교 전신)를 설립하여 한글, 국사, 수리, 농학 등을 가르쳤습니다.
      • 불교전수학교 교장 (1928): 불교 전문 교육기관인 불교전수학교의 초대 교장을 맡았습니다. 이 학교는 이후 중앙불교전문학교를 거쳐 현재의 동국대학교로 발전했습니다.
      • 중앙불교전문학교 교장 (1929-1932): 동국대학교 전신인 중앙불교전문학교 교장을 역임하며 불교 교육의 근대화와 체계 확립에 기여했습니다.
      • 정광학원 설립 (1947-1955): 해방 이후에는 광주에 정광중학교와 정광고등학교를 설립하여 교육 사업에 헌신했습니다.
    • 백양사 중창: 만암 스님은 퇴락했던 백양사를 중창하여 오늘날의 규모로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는 24년간 백양사 주지를 맡아 중창 불사를 이끌었습니다.
    • 불교계 활동:
      • 임제종 창립: 일제강점기 일본 불교에 한국 불교를 예속하려는 시도에 맞서 한용운, 박한영 등과 함께 임제종을 창립하여 한국 불교의 자주성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 조선불교중앙교무원 활동: 교학부장 등을 역임하며 중앙 불교 교단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 조계종 초대 종정: 해방 이후 혼란스러운 불교계에서 종명을 조계종으로 환원하고 종헌을 개정하는 등 한국 불교 정화 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954년에는 조계종 초대 종정으로 추대되었습니다.
      • 만암 종헌 스님의 조계종 초대 종정 추대는 한국 불교 정화 운동의 중요한 결실이자, 격동기 한국 불교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 일제강점기 불교 왜색화: 일제는 한국 불교를 통제하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변질시키려 했습니다. 승려의 결혼 허용, 일본식 사찰 운영 등이 강요되었고, 이는 한국 불교의 전통과 정체성을 훼손하는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 해방 이후 불교계의 혼란: 해방 이후 한국 불교계는 일제 잔재 청산과 전통 회복이라는 과제에 직면했습니다. 하지만 종단 내부의 의견 충돌과 갈등으로 인해 혼란이 지속되었습니다.
        • 비구-대처 갈등: 특히 승려의 결혼 허용 문제(대처승)를 둘러싸고 전통적인 비구승과 결혼한 대처승 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했습니다. 이는 종단 분열의 위기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 만암 스님의 역할: 만암 스님은 일제강점기부터 한국 불교의 자주성을 지키고 전통을 수호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해방 이후에는 이러한 혼란을 수습하고 한국 불교를 바로 세우기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덕망과 지도력을 바탕으로 종단 내부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종정 추대 과정:
        • 조계종 종단 출범: 만암 스님을 비롯한 뜻있는 스님들은 한국 불교의 정통성을 회복하고 종단을 재건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1954년 대한불교조계종이 공식적으로 출범하게 됩니다. 이는 왜색화된 불교를 청산하고 전통적인 비구 중심의 종단을 확립하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 초대 종정 추대: 새롭게 출범한 조계종은 혼란을 수습하고 종단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갈 지도자가 필요했습니다. 만암 스님은 그의 덕망과 연륜, 그리고 한국 불교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초대 종정으로 만장일치 추대되었습니다.
        • 추대 시점: 만암 스님은 1954년 대한불교조계종이 정식으로 출범하면서 초대 종정으로 추대되었습니다.
        종정 추대의 의미:
        • 한국 불교 정통성 확립: 만암 스님의 종정 추대는 왜색 불교의 잔재를 청산하고 한국 불교의 전통적인 가풍과 수행 정신을 되살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 종단 안정과 통합: 그의 지도력은 비구-대처 갈등으로 혼란스러웠던 종단을 안정시키고 통합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 조계종의 위상 확립: 만암 스님은 초대 종정으로서 조계종의 위상을 높이고,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종단으로서의 면모를 갖추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 향후 한국 불교의 방향 제시: 그의 가르침과 종정으로서의 활동은 이후 한국 불교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지침이 되었습니다.
      • 배경:
    • 선농일치 사상: 수행과 농사를 함께하며 자립적인 삶을 강조하는 '반선반농(半禪半農)' 사상을 실천하고 제창했습니다.
    만암 스님은 일제강점기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교육 활동과 쇠퇴한 사찰을 일으켜 세운 중창 불사, 그리고 해방 이후 한국 불교의 정통성을 확립하기 위한 노력 등 한국 근현대 불교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존경받는 인물입니다. 그의 가르침과 업적은 오늘날까지도 한국 불교계에 깊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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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향한 끊임없는 실천, 만암스님처럼...”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 우리 삶에도 작은 자각과 정진이 함께하길 바랍니다.

책의 목차


목차

발간사 | 한줄기 빛과도 같은 불교의 희망등 _ 진우
추천의 글 | 가장 가난했지만 가장 자비로웠던 보살 _ 무공

제1장 | 북한산 봉우리가 울었다
조상을 바꿀 수 있는가
법맥이 곧 혈맥
포연 속의 최고 지도자 ‘만암 교정’
진정한 정화의 길
폭력이 폭력을 부르다
탄허의 탄식
만암이 옳았다, 만암을 중흥조로!
마지막 죽비

제2장 | 인연은 박하고 인간사 참혹했노라
어머니 손을 잡고 산문을 넘다
넓고 평탄했던 스승 취운
백양사의 큰 스승 환응
작지만 큰 절 구암사
추사가 지은 호를 받다
연담의 영정을 가져오다
으뜸 도량 운문암 강석에 앉아
나라는 기울고 만암은 일어서다

제3장 | 맑은 거울은 앞뒤가 없다
이것이 무엇인가
물외암에서 깨닫다
학명이 깨달음을 만져주다
해동율맥을 잇다
백양사에 세운 금강계단
중도를 설파하다

제4장 | 임제종통을 지킨 남녘의 선승
백양사 스님들 “부처를 팔지 말라”
백용성과 박한영의 죽비
만암 ‘선우공제회’ 깃발을 들다 직사각형 입니다.

제5장 | 아름다운 절에 천년의 하늘을 담다
백양사를 다시 거룩한 백양사로
도의 스님 영각을 짓다
다시 솟아오른 운문암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다
남도 제일의 풍광 쌍계루

제6장 | 가장 가난했던 자비 보살
동물들도 만암 곁을 맴돌아
중이 되기 전에는 부처를 말하지 말라
노동은 또 다른 선이다
반선반농 운동을 최초로 펼치다

제7장 | 인재 불사가 곧 항일
광성의숙에 중도 하차는 없다
최초의 근대불교학교 명진
흔들렸던 불교학교
3.1만세혁명과 저항운동의 기수들
인재 불사의 꽃, 만암을 교장으로
정신문화의 요람, 중앙불전을 세우다
최후를 책임지는 인문학의 왕국
정광학원을 세우다

제8장 | 오래된 새 길, 고불총림
고불의 길을 따라 부처님처럼
고불총림은 또 다른 영산회

제9장 | 대웅전을 태우려면 나도 태우시오
구름도 숲도 울었다
제자 서옹
손상좌 수산

제10장 | 당우들이 소복을 입다
열반 직사각형 입니다.

글을 마치며 | 부처의 길에서 멀어진 이들은 만암 스님이 무서웠을 것이다

부록
만암종헌 대종사 연보
참고 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