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堂拈柱杖 良久後 打三下云 古云 舊來不動如如佛 喚作如如 早是變了也 如如 宇宙之母 一切萬物 從此如如而出來也 生也 不知生母 死也 不知死母 與畜生 無異矣 所以者何 世人但以貪嗔癡三毒 而作日用事之故也 欲出畜生類 舊來不動如如佛之一句 自證自悟 方爲去佛不遠矣
원문 해석과 주석
上堂拈柱杖 良久後 打三下云
- 상당에 올라 주장자를 들고, 잠시 침묵한 뒤 세 번을 치며 말하였다.
→ 선방에서 스님이 대중에게 법을 설할 때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행동입니다. - 拈
념,염,점집을 념(염)
古云 舊來不動如如佛 喚作如如 早是變了也
- 옛사람이 말하기를 “예로부터 움직이지 않는 여여불(如如佛)”이라 했으나, 여여(如如)라 부르는 순간 이미 그것은 변한 것이다.
→ "如如佛"은 본래 변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진여(眞如), 즉 진리를 상징하지만, 그것을 이름 붙이는 순간 벌써 분별의 세계로 들어간 것이라는 선의 지적입니다.
如如 宇宙之母 一切萬物 從此如如而出來也
- 이 ‘여여(如如)’는 우주의 어머니이며, 모든 만물이 이 여여에서 나오는 것이다.
→ 진여(如如)는 만물의 근원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선에서는 '如如'를 불성, 진리, 본래면목 등으로 표현합니다.
生也 不知生母 死也 不知死母
- 살아도 생명의 어머니를 모르고, 죽어도 죽음의 어머니를 모른다.
→ 중생들은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죽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는 깨우침의 지적입니다.
與畜生 無異矣
-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
→ 근원(如如)을 모르고 탐·진·치(貪嗔癡)에 끌려 사는 인간은 짐승과 다르지 않다고 경책하는 내용입니다.
所以者何 世人但以貪嗔癡三毒 而作日用事之故也
- 그 이유는, 세상의 사람들은 탐욕·분노·어리석음이라는 삼독으로 일상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 인간이 번뇌로 가득한 삶을 사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欲出畜生類 舊來不動如如佛之一句 自證自悟 方爲去佛不遠矣
- 짐승의 부류를 벗어나고자 한다면, '예로부터 움직이지 않는 如如佛' 이 한 구절을 스스로 증득하고 깨달아야 하며, 그래야 비로소 부처님으로부터 멀지 않게 된다.
→ 스스로가 如如佛, 즉 본래의 진리임을 체득해야만 진정한 수행자, 즉 부처에 가까운 자가 된다는 결론입니다.
✨ 요약
이 법문은 선종에서 강조하는 "말 이전의 진리", 즉 **이름 붙이기 이전의 본래면목(如如)**을 체득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진리는 이미 스스로에게 드러나 있지만, 언어와 분별로 인해 오히려 멀어지고, 이를 자각하지 못한 채 탐진치의 세계에서 사는 것이 중생의 실상임을 강조합니다.
핵심 해설
- "여여(如如)"의 역설
-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지만, 이름 붙이는 순간 이미 진리가 아닌 개념이 됨.
→ 선종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리" 사상 반영 (언어의 한계 지적)
-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지만, 이름 붙이는 순간 이미 진리가 아닌 개념이 됨.
- "우주의 어머니"
- 불성(佛性) 또는 **진여(眞如)**를 상징. 만물의 근원이지만, 사람들은 이를 망각하고 삼독에 빠져 살아감.
- "생모(生母)·사모(死母)를 모른다"
- 삶과 죽음의 근본(진리)을 깨닫지 못한 채 표면적 욕망에 매여 사는 인간의 어리석음 비판.
- 해탈의 방법
- **"스스로 깨달아야 함"**을 강조 (타인의 가르침에 의존하지 말 것).
- "예로부터 움직이지 않는 부처" = 본래부터 갖춘 깨달음의 성품.
선종 사상과의 연관성
- "말을 떠나라" → 《금강경》의 "말[相]에 집착하지 말라"는 가르침 계승.
- "직접 체험" → 혜능(慧能)의 "돈오(頓悟)" 사상과 일치.
- "삼독에서 벗어나라" → 모든 불교 교리에서 강조하는 근본 수행.
🔹 핵심 메시지:
"如如佛" — 이름 붙이기 전에 이미 완전한 진리, 이를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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