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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경전

<디가니까야>범망경(梵網經, Brahmajāla Sutta)

by 페이지85 2025. 5. 30.

디가 니까야(Dīgha Nikāya)는 초기 불교 경전 중 '긴 경전 모음'을 의미하며, 그 중에서도 **범망경(梵網經, Brahmajāla Sutta)**은 가장 첫 번째에 위치하는 매우 중요하고 심오한 경전입니다. 이 경전은 부처님께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그릇된 견해와 사상을 62가지로 분류하고 비판하시면서, 그 너머의 진정한 가르침(중도)을 설하시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범망경의 이름과 의미

'범망(梵網, Brahmajāla)'은 문자적으로 **'브라흐마(범천)의 그물'**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그물'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1. 부처님의 지혜의 그물: 부처님의 지혜가 세상의 모든 사상과 견해를 남김없이 꿰뚫어 보고 포착하는 그물이라는 의미입니다. 마치 거대한 그물이 모든 것을 포괄하듯이, 부처님의 깨달음은 어떤 사상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2. 번뇌와 집착의 그물: 동시에 세상 사람들이 집착하는 62가지 그릇된 견해들이 마치 그물처럼 사람들을 얽어매어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도 내포합니다.

범망경의 배경

이 경전은 부처님께서 마가다국과 앙가국 사이를 여행하시던 중, 수행승 수삐야와 그의 제자 브라흐마다따가 부처님과 승가를 비난하고 칭찬하며 논쟁하는 것을 들으시면서 시작됩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수행승들에게 세상에는 세 가지 종류의 칭찬과 비난이 있음을 알려주시고, 이어서 **"나는 무엇 때문에 찬양받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서 62가지 그릇된 견해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그 너머의 진정한 깨달음을 제시합니다.

범망경의 핵심 내용: 62가지 그릇된 견해

범망경은 세상의 수많은 철학적, 종교적, 윤리적 견해들을 '망견(妄見)' 또는 **'삿된 견해'**라고 규정하고, 이를 62가지로 분류하여 상세히 비판합니다. 이 62가지 견해는 크게 과거와 미래에 대한 견해로 나뉩니다.

1. 과거에 대한 18가지 견해 (前際見, Pubbanta-kappikā)

과거의 존재(나, 세계)가 어떻게 존재했는지에 대한 견해들입니다.

  • 상론(常論, Sassata-vāda): 영원하다고 주장하는 견해입니다.
    • 자아와 세계가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4가지 견해.
  • 반상반단론(半常半斷論, Ekacca-sassata-ekacca-asassata-vāda): 부분적으로 영원하고 부분적으로 단멸한다고 주장하는 견해입니다.
    • 범천(梵天)이나 특정 신의 창조를 주장하며, 그 신은 영원하고 나머지는 변화한다고 보는 4가지 견해.
  • 유한무한론(有邊無邊論, Antānanta-vāda): 세계가 유한하거나 무한하다는 견해입니다.
    • 세계가 공간적으로 유한하거나 무한하다고 주장하는 4가지 견해.
  • 이설론(異說論, Amarāvikkhepa-vāda):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않고, 논쟁을 피하기 위해 회피적인 태도를 취하는 견해입니다.
    •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아니라고 하며, 질문에 대해 모호하게 대답하는 4가지 견해.
  • 무인론(無因論, Adhiccasamuppanna-vāda): 원인 없이 발생한다고 주장하는 견해입니다.
    • 세계나 자아가 우연히 발생했다고 주장하는 2가지 견해.

2. 미래에 대한 44가지 견해 (後際見, Aparanta-kappikā)

미래의 존재(나, 세계)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견해들입니다.

  • 유상론(有想論, Saññī-vāda): 죽은 뒤에도 의식(想)이 있다고 주장하는 견해입니다.
    • 죽은 후에도 자아가 있고, 그 자아가 행복하거나 불행하다는 등 16가지 견해.
  • 무상론(無想論, Asaññī-vāda): 죽은 뒤에는 의식(想)이 없다고 주장하는 견해입니다.
    • 죽은 후에는 자아가 없고, 아무런 인식이 없다는 등 8가지 견해.
  • 비유상비무상론(非有想非無想論, N'evasaññī-nāsaññī-vāda): 죽은 뒤에도 의식(想)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고 주장하는 견해입니다.
    • 더 높은 경지에서 인식이 미묘하게 존재한다고 보는 8가지 견해.
  • 단멸론(斷滅論, Uccheda-vāda): 죽으면 완전히 소멸한다고 주장하는 견해입니다.
    • 자아가 물질적인 것과 함께 완전히 사라진다고 주장하는 7가지 견해.
  • 현법열반론(現法涅槃論, Diṭṭhadhamma-nibbāna-vāda): 현생에서 감각적 쾌락을 누리는 것이 곧 열반이라고 주장하는 견해입니다.
    • 현생의 감각적 쾌락이나 특정 선정 체험을 궁극적인 해탈로 보는 5가지 견해.

범망경의 궁극적인 메시지

부처님께서는 이 62가지 그릇된 견해들을 하나하나 분석하시면서, 이 모든 견해들이 감각기관과 대상,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느낌과 갈애, 집착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하십니다. 즉, 모든 그릇된 견해들은 오온(색수상행식)에 대한 집착과 '나'라는 아상(我相)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이 모든 견해들을 넘어선 **'진정한 깨달음'**을 제시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어떤 견해에도 집착하지 않고, 모든 번뇌를 끊어 고통의 윤회에서 완전히 벗어난 상태, 즉 열반입니다.

범망경은 부처님께서 **정견(正見, 바른 견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어떤 특정한 견해나 사상에도 얽매이지 않는 중도(中道)**의 길을 보여주는 경전입니다. 모든 망견은 마치 그물처럼 존재를 얽어매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 모든 그물을 벗어나 진정한 자유와 평화에 이르는 길임을 설파합니다.

현대적 의미

범망경은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수많은 이념과 사상, 가치관이 혼재하는 지금, 범망경은 어떤 특정한 주장이나 신념에 맹목적으로 집착하는 것을 경계하고, 본질적인 진리를 통찰하는 지혜의 눈을 길러야 함을 상기시켜 줍니다. 또한, 자신만의 생각에 갇혀 타인을 비방하거나 논쟁하는 대신, 모든 존재의 상호의존성을 깨닫고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중요함을 일깨워 줍니다.

범망경은 불교의 방대한 가르침의 시작점으로서, 모든 견해를 초월한 진정한 해탈의 길을 명확히 제시하는 귀중한 경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