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강경 제9분 《一切無相分》
(모든 상이 없음을 밝히는 장)
🪷 본문과 번역 (한 줄씩)
須菩提。於意云何。須陀洹能作是念。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수다원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我得須陀洹果不。
‘나는 수다원과를 얻었다’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須菩提言。不也世尊。何以故。
수보리가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까닭은 무엇입니까?
須陀洹名為入流而無所入。
수다원이란 ‘흐름에 들어간 자’라 하나, 실상은 어느 곳에도 들어감이 없습니다.
不入色聲香味觸法。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에도 들어감이 없습니다.
是名須陀洹。
그래서 이름만 수다원이라 부릅니다.
須菩提。於意云何。斯陀含能作是念。我得斯陀含果不。
수보리야, 사다함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사다함과를 얻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須菩提言。不也世尊。何以故。
수보리가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까닭은 무엇입니까?
斯陀含名一往來。而實無往來。
사다함은 ‘한 번 다시 돌아온다’는 이름이지만, 실상은 오고 감이 없습니다.
是名斯陀含。
그래서 사다함이라 부릅니다.
須菩提。於意云何。阿那含能作是念。我得阿那含果不。
수보리야, 아나함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아나함과를 얻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須菩提言。不也世尊。何以故。
수보리가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까닭은 무엇입니까?
阿那含名為不來而實無來。
아나함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뜻이지만, 실상은 오는 것도 없습니다.
是故名阿那含。
그래서 이름만 아나함이라 부릅니다.
📜 彌勒頌 (미륵의 게송)
捨凡初至聖 煩惱漸輕微
범부를 버리고 처음 성인의 길에 들면, 번뇌가 점차 가벼워지네.
斷除人我執 創始至無為
나와 남이라는 집착을 끊어, 무위(無爲)의 길이 시작되네.
緣塵及身見 今者乃知非
경계와 몸에 대한 집착, 지금에서야 그것이 허망함을 알게 되네.
七返人天後 趣寂不知歸
일곱 번 인천(人天)에 왕복한 뒤, 고요한 열반을 향해 되돌아오지 않네.
🧘♂️ 이어지는 아라한의 경지
須菩提。於意云何。阿羅漢能作是念。我得阿羅漢道不。
수보리야, 아라한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아라한의 길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須菩提言。不也世尊。何以故。
수보리가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까닭은 무엇입니까?
實無有法名阿羅漢。
실상은 ‘아라한’이라는 어떤 실체적인 법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世尊。若阿羅漢作是念。我得阿羅漢道。即為著我人眾生壽者。
세존이시여, 만일 아라한이 ‘내가 아라한을 얻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곧 나·사람·중생·수자의 상에 집착한 것입니다.
🧘♂️ 수보리의 겸허한 고백
世尊。佛說我得無諍三昧。人中最為第一。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저를 ‘무쟁삼매’를 얻고 사람들 중 가장 뛰어난 자라 하셨습니다.
是第一離欲阿羅漢。我不作是念。我得阿羅漢道。
탐욕을 여윈 첫째 아라한이라 하셨지만, 저는 ‘내가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世尊。則不說須菩提是樂阿蘭那行者。
세존이시여,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저 수보리를 아란나(阿蘭那)를 즐기는 자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以須菩提實無所行。而名須菩提是樂阿蘭那行。
왜냐하면 수보리는 실제로는 어떤 행도 하지 않지만, 다만 이름으로 아란나행(조용한 수행을 즐기는 수행자)이라 불릴 뿐입니다.
📜 彌勒頌 (미륵의 게송)
無生即無滅 無我復無人
생함이 없으니 멸함도 없고, 나도 없고 남도 없네.
永除煩惱障 長辭後有身
번뇌의 장애를 영원히 끊고, 다시는 윤회에 들지 않네.
境亡心亦滅 無復起貪瞋
경계가 사라지면 마음도 사라지고, 탐욕과 성냄도 다시는 일어나지 않네.
無悲空有智 業然獨任真
자비도 없고 공(空)도 없지만, 지혜로 진리에 머무르네.
🧾 마무리 해설
네 개념 — ātman (아트만), jīva (지바), sattva (삿뜨바), pudgala (붓달라) — 는 각각 인간 존재의 정체성, 생명성, 주체성, 인격성 등을 다루며, 주로 힌두교와 불교에서 중심적인 철학적 논의 대상입니다. 아래에 각각의 개념을 간단히 비교 설명드립니다:
🧘♂️ 1. Ātman (아트만) – 힌두교의 ‘참된 자아’
- 의미: 변하지 않는 영원한 자아. 진아(眞我)라고도 번역.
- 힌두교에서는: 브라만(절대적 실재)과 동일한 것으로 여겨지며, 윤회의 주체.
- 불교에서는: **무아(anātman)**를 주장하며 이를 부정. 영원불변한 자아는 없다고 봄.
🌱 2. Jīva (지바) – ‘생명 있는 존재’
- 의미: 생명력 또는 개별적 생명체. 육체 안에 깃든 영혼적 존재.
- 힌두교 및 자이나교에서는: 죽지 않는 영혼이면서, 업(karma)에 따라 윤회하는 존재.
- 불교에서는: 고정된 실체로서의 ‘지바’는 인정하지 않음. 생명은 **오온(五蘊)**의 집합일 뿐.
🌀 3. Sattva (삿뜨바) – ‘중생’ 또는 ‘의식 있는 존재’
- 의미: 불교에서 **유정(有情)**이라 번역됨. 감정과 의식이 있는 존재.
- 불교 용법:
- 일반적 의미에서는 중생(중유정)과 같은 뜻.
- 대승불교에서는 **보살이 모든 삿뜨바를 제도(구제)**한다고 말함.
- 힌두교에서는: 삼구나(三德) 중 하나로, 맑고 고요한 본성(지와 선함)을 뜻하기도 함.
👤 4. Pudgala (붓달라) – 불교의 ‘인격적 주체’ 개념
- 의미: '개인' 또는 '인격', 혹은 오온의 결합체로서의 실존적 주체.
- 설일체유부 등에서는: 인격적 자아로서 pudgala는 부정됨.
- 중기불교 중 푸드갈라바디(人論者)들은: “무아”를 인정하면서도 업을 받는 주체로 pudgala를 부분적으로 인정.
- 논란: pudgala는 실체적 자아는 아니나, 윤회와 업의 책임을 설명하기 위한 비실체적 자아 개념.
📊 요약 비교 표
Ātman | 영원한 자아 | ❌ 부정 (무아) | 고정된 자아 없음 |
Jīva | 생명체, 살아있는 존재 | ❌ 부정 | 고정된 영혼 불인정, 연기론 적용 |
Sattva | 의식 있는 중생 | ✅ 부분 인정 | 보살의 제도 대상 |
Pudgala | 인격 주체 (오온 결합체) | ❌ or 🔶 (논의 중) | 일부 종파에서 설명용 개념으로 채택 |
🌿 사과(四果) – 수행자의 4단계 깨달음의 경지
이것은 주로 성문승에서 말하는 수행의 경지를 네 단계로 나눈 것입니다. 즉, 아라한이 되기까지의 단계입니다:
1果 | 수다원예류(預流) | Srotāpanna | '입류자'로, 성자의 흐름에 입문한 자. 7생 이내 해탈. |
2果 | 사다함 일래(一來) | Sakṛdāgāmin | '한 번 돌아올 자'로, 탐·진·치가 거의 사라짐. |
3果 | 아나함 불환(不還) | Anāgāmin | '다시는 돌아오지 않음', 욕계에 다시 태어나지 않음. |
4果 | 아라한(阿羅漢) | Arhat | 번뇌를 완전히 끊고, 해탈을 이룬 완성자. 열반에 든 자. |
🌊 이 사과는 개인의 해탈을 위한 수행 과정에서 중대한 이정표 역할을 합니다.
📌 삼승과 사과의 관계
- 성문승 → 사과의 4단계를 통해 아라한에 도달.
- 연각승 → 독자적 수행을 통해 벽지불(緣覺佛)이 됨.
- 보살승 → 수많은 생을 거쳐 **부처(佛, Buddha)**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함.
즉, 사과는 소승불교의 해탈 구조, 삼승은 수행 목적과 대상의 차이에 따른 구분입니다.
이 장은 성자의 네 단계(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의 이름은 있으되 실체는 없으며, 그 이름조차도 집착하면 참된 깨달음에서 멀어진다는 가르침을 전합니다. 나아가 '법마저도 놓아야 할 대상'임을 강조하며, **무상(無相)과 무집착(無執着)**을 통한 진정한 자유의 길을 열어 보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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