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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제2능변식이다.
이 식을 말나식이라고 이름하나니, manas 의근(마음-의식의 토대, 전 찰나의 6식)-앞찰나의 경험과 지금 현재 찰나의 경험을 비교
그것(아뢰야식)에 의지해서 유전하고 그것을 반연하는 도다. 아뢰야식의 견분을 반연
사량하는 것을 자성(자증분)과 행상(行相)=(견분)으로 삼는다.
次第二能變 是識名末那
依彼轉緣彼 思量爲性相
[유식학 산책] 집착하는 나(我)의 뿌리, 제7 말나식의 비밀을 풀다
안녕하세요! 지난 글에 이어 오늘은 유식학(唯識學)에서 말하는 마음의 두 번째 변화 주체, '제2능변식(第二能變識)'에 대해 깊이 있게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이건 내 생각이야", "내가 맞다니까!"라며 강한 자아의식을 드러내곤 합니다. 유식학에서는 이처럼 끊임없이 '나'를 고집하고 사량하는 심층적 자아의식의 뿌리를 바로 '말나식(末那識)'이라고 부릅니다.
유식삼십송 제5송을 통해 말나식이 어떻게 작동하며, 왜 우리가 그토록 자기집착에서 벗어나기 힘든지 그 구조를 세밀하게 살펴보겠습니다.
次第二能變 是識名末那 (차제이능변 시식명말나) 依彼轉緣彼 思量爲性相 (의피전연피 사량위성상)
## 1. 말나식(末那識), 이름에 담긴 뜻: 표명문(標名門)
'말나(Manas)'는 산스크리트어를 음역한 것으로, 뜻으로 풀면 '의(意)'가 됩니다. 이 식은 다른 어떤 마음보다도 항상 깊이 생각하고 헤아리는 성질(항심사량, 恒審思量)이 뛰어납니다.
전 찰나의 경험과 현재 찰나의 경험을 끊임없이 비교하고 대조하는 '의식의 토대(의근)'가 되어주기 때문에, 유식학에서는 이를 제2능변식의 고유한 이름으로 삼았습니다.
## 2. 말나식은 어디에 의지하고 무엇을 바라보는가?: 소의문(所依門)·소연문(所緣門)
"그것에 의지해서 유전하고 그것을 반연하는도다 (依彼轉緣彼)"
말나식이 지독하고 강렬한 자기집착성을 갖게 되는 근본 원인이 바로 이 구절에 숨어 있습니다.
- 소의(所依): 말나식은 존재의 근본식인 제8 아뢰야식에 의지하여(依彼) 흘러갑니다. 아뢰야식이라는 든든한 배경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습니다.
- 소연(所緣): 더욱 흥미로운 점은 말나식이 인식하는 대상(소연) 역시 제8 아뢰야식의 견분(見分, 인식하는 작용)이라는 점입니다.
즉, 말나식은 아뢰야식에 딱 붙어서 아뢰야식의 작용을 바라보며 "아! 이것이 바로 나(자아)구나!" 하고 굳게 착각하고 인연을 맺는[반연] 것입니다.
## 3. 말나식의 본질과 작용: 자성문(自性門)·행상문(行相門)
"사량하는 것을 자성과 행상으로 삼는다 (思量爲性相)"
- 자성(自性=성품 性): 식의 자체적인 본질(자증분)을 뜻합니다. 말나식의 본질은 늘 헤아리고 생각하는 '사량(思量)' 그 자체입니다.
- 행상(行相=모습 相): 식이 외부 대상을 향해 일으키는 인식 작용(견분)을 뜻합니다. 말나식이 겉으로 드러내는 모습 역시 끊임없이 자아를 저울질하고 집착하는 '사량'의 모습입니다.
결국 말나식은 본질도 사량이고, 하는 일도 사량인, 그야말로 '나에 대한 생각과 집착으로 똘똘 뭉친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마치며: 나를 내려놓는 공부의 시작
우리가 왜 가만히 있어도 이기적인 마음이 솟구치고, '내 것'에 집착하게 되는지 이제 이해가 되시나요? 내 마음의 깊은 곳에서 제7 말나식이 제8 아뢰야식을 오인하여 밤낮으로 "나야, 나!"를 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고집하는 자아가 실제로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식과 식이 서로 의지하고 오인하여 만들어낸 '사량의 결과물'임을 아는 것. 이 구조를 꿰뚫어 보는 것이야말로 완고한 자기집착의 벽을 허무는 유식학 수행의 핵심입니다.
오늘 하루는 내 안에서 쉼 없이 작동하는 이 '말나식의 사량'을 가만히 지켜보는 시간을 가져보시는 건 어떨까요?